브라질 이민 50년, 한 이민자의 삶을 돌아보다 – ⑪ 웃으며 살다, 웃으며 떠난 사람들
▶ [브라질 한인 이민 50년 전체 글 목록 보기] 브라질 이민 50년, 한 이민자의 삶을 돌아보다 – ⑪ 웃으며 살다, 웃으며 떠난 사람들 내가 아는 쌀 할아버지, 미다할아버지 한인분들은 그분을 미다할아버지 , 혹은 쌀 할아버지 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1976년에 이민을 왔는데, 가끔 식품점이나 교회에서 그분을 뵙곤 했습니다. “안녕하세요”라는 짧은 인사 외에는 말씀이 거의 없으신 분. 제 기억 속의 미다할아버지는 늘 먼저 인사를 건네시고, 말 대신 미소만 지으시던 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 저 분이 미다 할아버지야 ” 하고 조용히 속삭이던 장면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1970년대 후반, 브라질 한인교회마다 부흥회가 잦던 시절에도 미다할아버지는 늘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한국 사람이 그리워, 한국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신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한인들의 보증을 많이 서 주었다가 재산을 거의 잃었다는 이야기, 예전에 있던 한인 유원지 역시 그분의 기증으로 마련되었다는 말도 뒤늦게 전해 들었습니다. 미다할아버지의 선행은 늘 이렇게 조용히, 뒤에서 알려졌습니다. 10년 전쯤, 그분의 이야기를 더 알고 싶어 수소문하던 중 IMOSP 신문에 미다할아버지의 삶이 연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오지원 기자가 쓴 글을 통해 그분의 삶을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 미다할아버지를 기억하는 한 권사님의 증언입니다. 어디를 가시든 먼저 남을 먹이던 분, 넘치는 것이 있으면 꼭 챙겨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던 분. 정작 본인은 늘 도시락을 싸 다니며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하셨다고 합니다. “제가 평생 편안한 얼굴을 본 분이 딱 두 분인데, 한 분은 암으로 투병하시던 분이고, 다른 한 분이 바로 미다할아버지셨어요.” 늘 웃으셨고, 늘 감사하셨고, 끝까지 사람을 기억하며 안부를 물으셨다고 합니다. 미다할아버지는 말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저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