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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 que decidi trocar meu CRNM ant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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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 sistema de identidade no Brasil está mudando O documento de identidade do cidadão brasileiro, o RG , começou a ser utilizado em 1938, ou seja, trata-se de um sistema com mais de 80 anos de história. A partir de 2022, o governo brasileiro passou a emitir um novo modelo de identidade, chamado CIN (Carteira de Identidade Nacional) . Nesse novo formato, o número do RG deixa de existir, e a identificação passa a ser feita por um número único: o CPF . O motivo dessa mudança é claro. Em vez de números diferentes emitidos por cada estado, o CPF passa a ser um número válido em todo o território nacional. Além disso, a nova identidade incorpora QR Code , permitindo incluir mais informações, aumentar a segurança e adaptar o sistema à realidade da administração digital. Como estrangeiro residente permanente no Brasil, eu possuo a CRNM . O documento que utilizo atualmente ainda é do modelo antigo. Essa versão não contém CPF nem QR Code. Já as CRNMs emitidas recentemente ...

Renovação da residência: há algum truque para conseguir agendar o atendimento? – Na verdade, não há (Atualização 20/02/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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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ós solicitar a renovação da permanência (RNM/CRNM) , o maior obstáculo costuma ser o agendamento da visita à Polícia Federal . Há quase 10 anos, escuto com frequência que, depois de preencher o pedido de renovação ou de solicitação inicial, conseguir uma data de atendimento é muito difícil . Na prática, muitos relatos se repetem: “Agendamento online é praticamente impossível” “Antes, uma livraria em frente à Polícia Federal conseguia marcar a data, mas isso acabou” “Paguei alguém para fazer o agendamento por mim” Por isso, recebo muitas perguntas sobre esse tema.

영주권 갱신, 방문 예약 쉽게 하는 노하우는 - 정확히는 없음(업데이트 202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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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 갱신 신청 후, 가장 큰 난관은 ‘방문 예약’ 입니다. 지난 10년 가까이, 영주권 갱신이나 신규 신청서를 작성한 뒤 연방경찰 방문 예약을 잡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습니다. 실제로 “온라인 예약은 거의 불가능하다” “연방경찰서 앞 서점에서 날짜를 받아주었는데 지금은 없어짐” “대행해 주는 사람에게 비용을 주고 예약했다” 이런 이야기로 문의를 주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업데이트, 2026.02.20)  잘 되는 때도, 잘 안되는 때도 있는 것이.. 연방경찰에서 예약을 풀어줄 때만 가능합니다! 특정 날짜를 다 해 보았는데, 특히 카니발 연후 전 후로는 더 안되었고..  주말, 저녁시간에 좀 잘 되는 편입니다 (로 결론 내립니다.) 그런데, 이글을 올린 날(20일, 금요일 5시.. 됩니다 ㅎㅎ) 👉 추가 결론 : 금요일 저녁이 가장 잘 되는 날 같습니다!

🍂 삶의한가운데서 : 전자책은 이렇게 만드는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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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의 글이, 어느새 전자책이 되었다. 나는 따로 컴퓨터를 배운 적이 없다. 브라질에 사는 거의 모든 한인들이 그렇듯, 필요에 의해 써 왔을 뿐이다. 지금 내가 남들보다 컴퓨터를 조금 더 다루는 이유도 좋아서라기보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는 말이 더 맞다. 하다 보니 익숙해진 컴퓨터 교회에서 교사로 일하던 시절, 컴퓨터와 인터넷이 막 보급되기 시작했다. 핫메일과 메신저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자, 내가 가르치던 아이들에게 이것을 빨리 알려주고 싶었다. 당시 비싸던 중고 컴퓨터 다섯 대를 구해 교회에 인터넷을 설치하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문제는 컴퓨터가 자주 고장 난다는 것이었다. 중고였고, 윈도우 95 시절이라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이런저런 문제가 생겼다. 하드웨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젊은 교사에게 부탁했지만 잘 봐주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직접 부품을 뜯어 들고 상파울루 산타 이피제니아 거리를 다니며 무엇이 망가졌는지 묻고, 교체하고, 다시 조립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컴퓨터 고치는 일은 환자를 보는 것보다 오히려 레고처럼 구조를 알면 쉬운 작업 이라는 것을. 그때서야 왜 컴퓨터를 ‘잘하는’ 사람도 하드웨어는 잘 모를 수 있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후 많은 분들의 컴퓨터와 노트북을 봐 드렸다. 수리비가 새 노트북 값과 같아 포기하고 쌓아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드디스크 문제인 경우가 많았는데, 포맷과 분할만으로도 정상 작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고쳐주면 다들 신기해했다. AI를 만나며 달라진 기록의 방식 반면 소프트웨어 쪽은 깊이 알 필요가 없었다. 특별한 프로그램을 쓸 이유도 없었고, 브라질에는 체계적으로 컴퓨터를 가르치는 학원도 많지 않았다. 그러다 글을 쓰게 되었고, 아이들에게 줄 책도 만들었다. 그때는 한 권 만드는 데 2~3개월이 걸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브라질 이민 50년’**이라는 기록을 한 달도 채 안 되어 정리했다. 기...

브라질 이민 50년, 한 이민자의 삶을 돌아보다 – ⑮ 온라인에서 만난 인연들, 그리고 도움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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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로운 문명 속에서 만난 첫 친구 모뎀 소리로 세상과 연결되던 시절, 인연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AI가 만든 이미지) 사람은 태어나 서로 만나게 되며 사귀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새로운 문명의 변화로 인해 또 다른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브라질에서 인터넷이 시작되며 모뎀으로 접속하던 때, 여러 친구들 중 좋은 친구를 하나 만나게 되었다. 컴퓨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할 때… 아마 1998년 정도 되지 않나 싶다. 좋은 글, 감동 글을 찾아다니다가  Daum 에서 만난 운영자분. 얼굴도 모르지만 글을 너무 잘 쓰고 말도 조리 있게 하셔서 호감이 가 꼬셨다 ㅎㅎ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넷 상에서도 유명한 여성 시인이었다. 송XX, 시인이자 화가였던 이 분은 항상 내가 필요할 때 필요한 동영상이나 그림을 만들어 주셨다. 나에게는 지금의 AI(인공지능) 같은 분이셨다. 자그만치 20년 넘게 우리는 가까운 친구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실크로드라는 희귀불치병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때도 있는 이 분은 브라질 한인사회를 20년 이상 지켜보았고, 또 브라질 한인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나를 도와 한인사회에 도움을 주신 분이시기도 하다. 필요할 때만 내가 찾았는데… 지금은 건강히 잘 계시는지, 좀 전 안부 메일을 보냈는데 한메일이 더 이상 되질 않는다. ㅠㅠ 2. 포어 강의가 시작되다 – 남미로닷컴 이후 온라인 상에서 또 다른 친구 하나가 생겼다. 한인닷컴이  남미로닷컴 으로 넘어간 후, 그곳에서 만난 친구다. 한인닷컴부터 남미로닷컴까지, 한인들의 가장 큰 이슈는 늘 영주권 문제였다. (그 다음에 하나로가 있었는데, 그곳에서도 가장 중요한 주제는 역시 영주권이었다) 나는 늘 익명으로 글을 썼는데, 어느 날 한 사람이 포어를 가르쳐 달라고 하더니 여러 명이 동시에 포어를 가르쳐 달라고 말한다. 엥, 포어?? 포어는 나와는 거리가 멀고 자신도 없는데? 나도 하기 힘든 포어를 누굴 가르치나 싶어 거절했지만, 기...

브라질 이민 50년, 한 이민자의 삶을 돌아보다 ― ㉓ 결단을 미룬 공동체 (글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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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제13회 한국문화의 날. 한인복지회를 포함해 한인사회는 이미 현장에서 함께 움직여 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이 힘을 지속시키는 구조다. 쓰이지 않는 한인회 건물, 감당 못 하는 복지회 건물 한인회에는 ‘한인회관’이라는 건물이 있다. 그러나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아끌리마썽에 세워진 이 건물은 수십 년 동안 사실상 비어 있었고, 지금의 한인 생활권과도 완전히 멀어진 공간이 되었다. 한인회 이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브라질 한인은 없다. 그럼에도 왜 아무 변화가 없었는가. 과거의 공로와 정서가 판단을 막았고, 그 사이 한인회는 탄탄한 중심 기능을 갖지 못했다. 지금도 한인회 회의는 회관이 아닌 식당이나 임시 공간에서 열린다. 한인회 건물은 있지만, 한인회는 그 안에 없다. 상징을 남기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새로운 한인들과 젊은 세대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한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결단을 미뤄 왔다. 한인복지회도 다르지 않다. 국수공장이던 대형 건물을 9년간 고쳐 사용해 왔지만, 노후한 구조는 끊임없는 보수비를 요구한다. 봉사 첫날 눈에 띄게 지저분했던 환경, 개인 비용으로 페인트와 커튼을 교체해야 했던 현실은 이 공간이  시스템이 아닌 개인의 헌신으로 유지되어 왔음 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제는 분명히 한계를 넘었다. 자원은 있다, 그러나 묶이지 않았다 한인회에는 건물이 있고, 한인복지회에는 건물과 함께 OSCIP라는 강력한 제도가 있으며, 노인회에는 건립을 위해 비축된 자금이 있다. 우리는 없어서 못 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 따로 움직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한인복지회는 기업 후원을 세금 공제로 연결할 수 있는 제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공간과 구조가 분산되어 실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구조에서는 아무리 좋은 자원도 흩어질 수밖에 없다. 의료봉사는 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를 움직이지 못한다 의료봉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브라질 이민 50년, 한 이민자의 삶을 돌아보다 ― ㉒ 잊고 있던 이야기들, 재정과 봉사의 갈림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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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두 노인회의 이야기를 올리고, 마지막으로 결론의 글과 해결방안의 글 두 편을 올리며 끝을 맺으려 했었다. 그런데 문득, 잊고 지나간 이야기 몇 가지가 있어 이렇게 정리해 올려본다. 15년 전에는 일을 하면서 무엇이 시작이었고, 무엇이 중간이며, 무엇이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 예전 자료들을 다시 살펴보며 그 흐름을 비교적 정확히 알게 되었다. 1. 한인회에 들어가게 된 이유 – 재정 확보 서주일 회장이 나를 한인회로 불러들인 가장 큰 목적은 재정 확보와 관련된 일이었다. 당시 나에게는 브라질에 사는 한인 청소년들이 어떻게 하면 긍지를 가질 수 있을지, 또 어떤 방식으로 노인분들을 위한 봉사를 자발적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두 가지 고민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재정 확보를 위한 한 가지 방법을 제안했고, 그 방법은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결국 나를 한인회에 앉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아이디어는 바로 효과를 보았고, 많은 한인들이 자발적으로 1년 치 한인회비를 납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2년간 약 500명 × 350헤알 × 2 = 약 350,000헤알) 이때 처음으로, ‘의지만 있으면 한인사회도 충분히 움직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2. 한인회보와 사이트들, 그리고 감당하기 어려운 확장 이후 한인회보를 만드는 과정에서 유대인 봉사단체 Unibes를 취재하게 되었고, 그들의 활동이 인상 깊다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사람이 “사이트를 만들어 주겠다”고 나섰다. 며칠 뒤, 실제로 사이트 하나가 만들어졌고 그 일을 계기로 상황은 급격히 달라졌다. 한인회 재정을 위한 ‘한인지정업소’ 프로그램, 매달 발간해야 했던 한인회보, 한인회 홈페이지, 꼬레아닷컴, 양지노인회 블로그와 어머니 합창단 블로그까지. 일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이미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한인업소록 제작 요청이 이어졌고, 브라질 한인 인구조사, 이른바 ‘한인 센서’ 제...